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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표와 과제 Home>학회정보>목표와 과제

   

 


Ⅰ.


수학에도 역사가 필요한가? 라는 질문은 수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은 물론 수학자들 사이에서도 제기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의문은 수학이 필연적이고 연역적인 체계를 갖춘 학문이라는 일반적인 인식에서 보면 수긍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수학을 연구하는 자체가 이미 '역사적'인 행위이다. 다른 학문도 비슷하겠지만 수학을 한다는 것은, 대부분 과거의 성과를 정리하여 그것을 토대로 정의와 가정을 약간씩 바꾸어서 새로운 결과를 내거나 보다 일반적인 결과를 도출하려는 것이라는 점에서 수학사와 독립적일 수 없고 이미 수학사적인 영역에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수학은 수학외적인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조건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유클리드의 「원론」이 그러한 예가 된다. 이 책은 성서 다음으로 베스트 셀러이고 서구의 문화에서 지식의 전형으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원론」이 유클리드 한 사람의 연구 결과가 아니라 그 이전의 수학적 성과를 총정리한 것이라는 점에서 수학의 이러한 성격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자명하다고 여겨졌던 유클리드의 공준을 부정한 비유클리드기하가 등장했을 때 서구사회가 가졌던 지적충격은 사실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자명한 진리라고 여겨졌던 것에 대하여 또 다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당시 사람들에게 디디고 선 땅이 꺼지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사실 비유클리드기하의 등장은 철학을 포함한 문화전반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패러다임의 전이를 초래했다. 그래서 어떤 수학사가는 만약 1776년 미국 독립선언서가 비유클리드기하가 등장한 이후인 약60년 후에 기초되었다면 독립선언서의 "우리는 이러한 진실들이 자명하다고 믿는다.···" 와 같은 표현은 "우리는 다음을 위해서 노력한다" 든가 하는 보다 겸손한 방식으로 바뀌었을 것이라고 익살을 부렸다.


사실 수학사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는 수학의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성격을 도외시한 편협한 수학관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필자는 본고에서 수학사 연구의 의의를 소개하고 한국수학사 학회가 과제라고 생각하는 것을 피력하려고 한다.

Ⅱ.

오늘날 수학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현상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데 하나는 수학에 대한 관점의 변화이고 다른 하나는 현식적인 요구 때문이다. 특히 현대 수리철학의 경험주의적 성향은 수학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의 수정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오늘날 지도적인 수리철학자들은 수학을 더 이상 프레게식의 추상적이고 시간을 초월하는 객관적인 학문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수학적 대상들도 이제 플라톤 세계의 시민으로 간주되기 보다는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존재로서 이해되어진다. 이러한 수학관의 등장은 실제 과학사에 근거한 역사적 접근을 강조하는 쿤, 파이어아벤트, 폴라니 등의 '새로운 과학 철학'과 그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으며 수학자로 하여금 수학사에 주목할 수 밖에 없는 철학적 근거가 된다. 최근에 수학적 실천(Mathematical practice)이라는 개념이 중시되는 것도 같은 흐름이다.

이러한 수리철학의 변화 외에 수학사에 대한 괸심이 높아지는 또 하나의 이유는 교수와 학습의 필요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수학은 딱딱하고, 배우기가 쉽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은 현실은 수학을 잘 한다고 하는 학생에게나 그렇지 못한 학생에게나 동일하다. 그런데 수학사를 도입한 교수법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수학사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않다. 스월츠는 "무엇이 미적분학 발전의 원인이 되었는지, 어떻게 미적분학이 뉴톤과 다른 사람에 의해 사용되었는지를 이해하지 않고 미적분학을 배우는 것은 어떤 악보도 보지 못한채 피아노 음계를 치는 것을 배우는 것과 같다. " 고 했다. 수학사와 수학교육의 관계를 잘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수학사를 통한 교수법이 물론 모든 수학교육의 어려움을 쉽게 극복해 주는 것은 아니겠지만 학습자들과 함께 마치 유적지에 수학여행하는 기분을 느끼며 수학공부를 하는 일은 보다 더 즐거운 일일 것이다.

수학사는 이렇게 수학관의 변화와 수학교육의 현실적인 요구에서 관심이 커졌다고 할 수 있다. 수학사 연구는 과거 수학에 대한 기록과 체계적인 의미부여 작업으로서의 '수학사학' 그 자체로도 존립 기반을 가질뿐 아니라 수학을 연구하는 연구자에게 창조적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수학과 다른 학문과 어떠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 가를 보여준다. 또한 수학사 연구는 과학의 가장 효율적이고 강력한 언어라고 할 수 있는 수학을 통하여 표현된 문화유산-건축, 미술, 공예 등-에 대해 심도있는 이해의 틀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러한 수학사의 성격에 대해 칸트의 말을 원용한다면 수학없는 수학사는 공허하며 수학사 없는 수학은 맹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Ⅲ.

어떤 학문을 한다는 것은 이미 그 학문의 역사 속에 발을 들여 놓고 있는 것이라 했다. 만약 수학사가 배제된 수학을 한다면 그 수학은 두께가 없는 '평면적'인 수학이 될 수밖에 없다. 즉 깊이없는 수학을 하는 것이며 이러한 '평면적' 환경에서는 뿌리를 깊이 땅속에 박고 영양을 섭취하여야 얻어지는 탐스런 과실(학문적 성과)을 기대할 수 없다. 외국의 한 저명한 학자가 그가 연구에 있어서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역사적인 사례들을 검토하곤 한다는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풍부한 수학사적 지식과 이해가 수반된 수학은 두께가 있는 '입체적 수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께가 깊을수록 많은 자양분을 흡수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하여 수학적 작업은 창조적 결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우리 나라에 아직 수학의 노벨상이라고 불리우는 필드상 수상자가 없다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의 수학적 능력이 부족해서라기 보다 수학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고 궁극적으로는 수학문화의 '두께'가 빈약한 탓이 아닌가 여겨진다. 사실 창조적 작업이란 단순히 과거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라기 보다 과거의 것을 흡수 용해하여 새롭게 해석해 내는 '헌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수학이 단지 연역체계로서만 강조되어 '평면적'이 될 대 자양분의 공급은 원활하지 않다. '평면적' 환경을 극복하고 '입체적' 공간 위에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반 조성을 위해서도 수학사는 강조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 우리 나라에 있어서 수학사 연구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수학사에 대한 관심 부족이라기 보다는 자기 전공과 병행하기에 시간적으로 어렵다는 현실에 기인하는 것 같다. 오히려 연고와 교수를 위한 요구 때문에 수학사의 필요성은 대부분 절감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한국수학사학회는 이러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매월 콜로키움을 열고 있다. 대우재단의 지원으로 시작된 이 콜로키움은 1997년 1월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짐없이 모여 수학사 연구를 위한 입문적 지식을 쌓고 있다. 이 콜로키움은 수학사학회 회원은 물론 관심있는 사람은 누구나 참석할 수 있다. 감사한 것은 대전, 강릉, 청주, 군산, 부산, 광주 등 지방에 계신 선생님들도 바쁜 일정과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참석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콜로키움 후에 식사하면서 이루어지는 대화도 보람있고 수학사 이해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콜로키움의 주제들은 아직 관심에 비해서 수학사 공부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모른다는 여론을 고려하여 광범위한 영역으로부터 세부 수학사 쪽으로 좁혀가고 있으며 우리 나라 전통수학에 대한 발표도 포함되고 있다.

Ⅳ.

수학사 연구는 수학적 지식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것을 수학 내적인 요구와 외적인 동인을 묻는 두 가지 방향에서 추구한다. 특히 수학 내적인 요구를 탐구하기 위해서는 수학에 대한 전문적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반면에 외적인 동인을 찾는 연구는 문화적, 사회적 배경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오랫동안 서구의 엄밀한 지식을 대표해온 유클리드의 기하에는 그리스의 관념적 세계관이, 미적분학에는 17-8세기의 결정론적 세계관이 담겨있다. 이에 반해 20세기의 수학에는 모든 부분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연성과 비결정성 그리고 심지어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다원성까지 포함되고 있다. 하나의 수학적 성과에 수학 내적, 외적 관계가 날줄과 씨줄처럼 얽혀져 있는 것을 수학사의 한 장면에서 확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뉴톤의 미적분학은 중력이론과 관련이 있고, 중력이론은 행성의 운동을 이해하기 위한 것과 그리고 이것은 당시 일류 해양국가로 부상하려는 영국의 국가적 과제인 항해술과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

수학사 연구는 여러 범주에서 이루어 질 수 있다. 시대별이나 지역별로 또는 인물중심이나 주제중심으로 탐구될 수 있다. 수학사학회 회원들은 다양한 분야 - 수학사 일반, 세부전공과 관련한 수학사, 수리철학과 관련환 수학사, 수학교육과 수학사, 한국수학사, 수학과 문화, 인물수학사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 중에서도 특별히 본 학회에서는 우선 한국수학사에 노력을 집중할 예정이다. 세계화가 곧 지방화라는 말도 있지만 우리 것에 대한 정확한 이해의 선행없이 세계화된 지식사회에 동참하는 것은 진정한 동참이 될 수 없다는 생각에서이다. 부끄럽게도 한국수학사는 아직 제대로 연구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우리 문화재가 사장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여겨진다. 우리의 전통 수학이 일부의 비판대로 중국수학의 아류인지 아니면 중국 것을 수용하면서 독창적인 그 무엇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은 현대적 의미와 세계 수학에서의 기여는 무엇인지를 물어갈 것이다. 만약 전통수학의 범위를 수에 대한 형이상학적 입장과 논리까지로 확장한다면 이러한 논의는 또 달라지고 새로워 질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다른 수학사 분야를 간과하거나 소홀히 한다는 말은 아니다. 회원들의 관심분야에 따른 연구와 발표는 계속될 것이다.

한국수학사학회는 앞에서 언급한 대로 "수학사학" 그 자체의 학문적 가치를 추구함은 물론이고 수학연구의 토대조성과 수학교육에의 실질적 도움을 위해 그 '두께'를 조금씩 쌓아 수학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변형시키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많은 성원과 참여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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